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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머리카락 기부

by 선수입장 2023. 6. 1.

인생이 달라질까 해서 기른 머리지만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0-
그냥저냥 살다 보니 머리카락을 기부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서
어머나운동본부에 머리카락이 나오는 사진을 찍어 기부가 가능한지 메일로 물어보았다.
기부절차와 최소 길이는 홈페이지에 나와있지만 메일로 한번 더 확인차 물어보게 된 이유는
나의 머리는 생머리가 아닌 곱슬머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어머니께서 10달을 잘 말아주신 덕분에 평생 웨이브 상태로 살 수 있다.
곱슬 정도에 따라 가발이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을듯하여 사진까지 찍어 물어본 것인데 읽씹을 당했다 -_-;;
되면 된다! 안되면 안 된다! 내가 가발을 만드는 일을 담당하지 않아 판단이 어렵다. 사진상으로는 답변하기 어렵다
가타부타 말이라도 있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아무튼 답은 없었다.
기부를 하려고 기른 머리는 아니지만 이러려고 노심초사(?)하며 메일로 괜히 물어봤나 자괴감(?)이 들었다.
'그냥 말지 뭐' 하고 있다가 문득 나의 머리카락을 쓰고 말고는 어머나운동본부 사정이지 내가 그 사정까지 눈치 봐가며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잘라서 등기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시집보내는 부모의 마음으로 좋은 거 해주고 싶었다.
케라틴도 단백질이니 몸에 단백질이 남아돌면 머리카락에도 영양분이 공급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에
고기도 별로 안 좋아 하지만 매일 저녁마다 캠핑용 목살을 한 장씩 에어프라이에 돌려서 먹었다.
마치 운동하는 사람이 의무감에 닭 가슴살을 먹듯이;;;;
그렇게 한 10일을 먹고 오늘 조퇴를 내고 노란 고무줄과 지퍼팩 그리고 30cm 자를 들고 미용실에 들어갔다.
손에 들고 있는 특이한 물건 때문인지 미용실에 들어가자마자 사장님께서 바로 알아차리셨다.
머리 길이가 그리 길지 않아서 자르고 난 머리는 상관없으니 최대한 길게 기부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사장님께서 그래도 남은 머리가 너무 짧으면 스타일이 안 산다고 하시며 알아서 잘라주셨다.
여자들처럼 한 번에 댕강 자를 수 있는 길이가 아니라서 네 갈래로 묶고 잘랐다.
깍두기 같은 다섯 번째 목덜미쪽 머리는 25cm가 안 됐는데 사장님께서 혹시 쓰일지도 모르니 이것도 잘라서 보내자고 하시면서 고무줄로 묶어주셨다.(깍두기가 방해가 될 수도 있어서 다른 지퍼팩에 담았다)
사장님 말씀으로는 머리카락 길이가 짧으면 못쓰는 것은 아닌듯한데 공정에 손이 많이 가서 25cm 이상이라는 기준이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처음부터 기부를 하려고 길렀다면 이렇게 기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살다 보니 기회가 돼서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거창한 목표를 세우면 두세 발자국 가다 포기하기 십상이고 생각 없이 했던 일들이 뜻하지 않게 기회가 되는 것이 인생인 듯하다.
아무튼 나는 그동안 도사님 소리를 듣던 머리카락과 이별을 하였고, 목욕탕에 가서 목욕까지 한판하고 나니 뭔가 홀가분하다.
장발의 콧수염 남자에서 이제는 그냥  콧수염 기른 남자다
 

 

 
<추가작성>
퇴근길에 어머나 운동본부에서 회원등급이 변경되었다고 메일이 와서
홈페이지에 접속해보니 기부증이 출력된다.
기부하고 3주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평일로만 치면 3일만에 처리가 되었다.
기부하는 사람이 적어서 처리가 빨리 된 것인지, 운동본부에 인력이 충원된것인지는 모르지만
후자 이기를 바라며 소소한 자랑질로 마무리를 지으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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